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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인터뷰

큰 꿈을 가지고 유리천장을 뛰어넘다

큰 꿈을 가지고 유리천장을 뛰어넘다

글. 학생홍보대사 김도훈, 홍지현

1982년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입학생 325명 중 여성은 오직 3명뿐이었다. 나아가 경영계 전반에 여성이 차지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던 시절, 대한민국 금융계를 선도하는 여의도에서 여성이 CEO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2019년, 82학번 경영대 여학생 3명 중 한 명이었던 박정림 대표님은 최초의 증권가 여성 CEO로서 KB증권의 대표로 부임했다.

대한민국 여성 최초의 증권사 대표가 되시기까지 대표님께서 걸어오신 길이 궁금합니다.

제 가족은 당시 좀 특이하지만 여성 중심적이었어요. 어머니는 전문직이셨고, 저는 형제자매 중 나름 학업 성적이 좋았던 덕에, 가족 내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은 제가 위축되지 않고 계속해서 저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신감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처음에 체이스맨해튼에 입사했습니다. 외국계 은행을 첫 직장으로 가진 것이 현재까지 금융계에 종사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다만,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큰아들을 임신하게 되어 약 1년 정도의 경력 단절이 있었죠. 이것을 정확히 ‘경력 단절’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저는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 컨설팅사 등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어도 모두 떨어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당시 새롭게 설립된 조흥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이를 바탕으로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 부장을 거치고, 시장운영리스크 부장으로 KB국민은행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KB국민은행에서 자산관리, 리스크, 여신 업무를 맡으며 부행장, 부사장으로 근무를 이어가다가 작년에 KB증권의 사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제가 만약 그때 외국계 증권사에 애널리스트로 갔으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여러 직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제 커리어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데, 중간에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약 2년 동안 일을 했던 특이한 경험 이외에는 외국계 은행, 국내 은행, 보험사, 증권 등 금융사에서 계속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금융권 대부분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일 정도로 남자 중심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자로서의 특별한 대우를 바라기 보다는 이런 사회에 적응해야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요. 그래서 그분들과 밥도 많이 먹고, 토론도 많이 하며 같이 어울리는 활동을 통해 교류감을 형성하려 노력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회의 외 시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소위 말하는 ‘방과 후’ 시간을 많이 활용했죠.

 

그래도 단순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자리까지 오는 데에는 대표님만의 역량이 많이 필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어떠한 강점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여자로서 제가 충분히 가진 강점들을 적극 활용한 덕에 현재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 관찰도 많이 하고 칼럼도 쓴 적이 있는데요. 여자로서의 제 강점은 집중력, 멀티태스킹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일단, 집중력은 상당 부분 여자의 장점인 것 같아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월드컵이나 올림픽 있는 시기에 고시 합격률을 보면 여자가 더 높다는 기사를 종종 봤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여자의 두 번째 장점은 멀티태스킹 능력입니다. 남자들은 일 하나를 완벽히 끝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하나의 일을 시작한 뒤 다른 업무도 동시에 진행이 가능해요. 엄마들을 보면 집에서 밥 하면서 TV를 보고, 전화도 하고, 다림질까지 하는 등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잖아요. 남자 유명인 중에서 멀티태스킹을 가장 잘하는 분이 클린턴이라고 하던데, 보고를 받으면서 골프 연습을 하고, 뉴스를 보는 등 4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도 큰 장점입니다. 대화를 하면, 남자들은 대화 속 단어에 숨어 있는 진짜 뜻을 알아차리거나 상대의 표정을 파악하는 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는 듯해요. 상대방의 속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리고, 여자들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도 30분 정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도 집중력이 강하고 무언가를 맡으면 바로바로 처리하는 성격입니다. 제 생각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라서,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회의할 때도 심각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회의 중간에 잡담도 많이 하는 편인데 심지어 드라마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면 말만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발표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집중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콜라보라고 생각해요.

현재도 저는 CEO는 늘 트렌드에 집중해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아침에 독서클럽, 각종 세미나, 급변하는 산업에 관한 기사 및 정보 습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1시간은 보고 등에서 벗어나 학습 및 생각 정리 등의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CEO가 집중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기업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비대면으로 보고를 미리 받아 이슈를 파악한 뒤 담당자와 함께 소통하고, 집에서 못 다 읽은 자료를 읽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보고서를 다 읽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할 땐 최대한 결론부터 서술하라고 하는 편이에요. 중요 정보들은 CEO가 피드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침형 인간은 아니에요(웃음). 깨어 있는 동안 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하는 것이죠.

 

금융계에 상당히 오래 종사하신 만큼, 많은 경영대 학생들이 꿈꾸는 분야인 금융계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윤리의식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의 돈이든, 기관의 돈이든 결국 금융업이란 고객의 돈을 받아서 투자하는 것이니만큼 결국 그 자금 운용에 대한 윤리의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실력보다도 흔히 ‘Fiduciary duty’라고 불리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제가 예전부터 ‘리스크 관리는 하늘이 아니라 땅을 보고 하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는데요. 숫자만 보고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업무를 잘 알고 문제가 생길 것들을 예방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금융은 단순히 계산과 수학이 아니거든요. 금융이라는 산업의 특성을 잘 알고, 윤리의식을 가지고 업계에 오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현재도 여성 동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시고, 경영대 동문들과도 지속적인 소통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에게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은 어떤 의미이며,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저는 살면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이라는 브랜드 프리미엄을 누렸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 누리고 있죠. 제가 대학을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경영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저를 기대하고, 잘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줬던 것 같아요. 그런 기대 덕분에 저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됐죠(웃음).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동문이 잘 포진되어 있어서 동문들의 덕도 정말 많이 봤습니다. 저는 고성장시대에 대학을 나왔고, 대학을 나오면 취업이 보장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후배들이 저와 같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때 가슴이 아파요. 특히, 제가 듣기로 요즘 경영대 학생 중에서 업계로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로스쿨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거나, 행시에 붙어서 공무원이 되는 것도 좋지만 큰 곳에 들어가서 CEO가 되어 보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일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직접 조직을 운영해보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해보는 것을 정말 추전합니다.

그리고 다신 오지 않을 인생에서의 황금기인 대학교 4년을 모두 취업 준비에만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즐기되, 충실히 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제가 과거 부행장일 때 항상 위, 다음 자리만 바라보게 되니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요.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즐기면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과에서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아요. 만약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면, 성패의 여부를 떠나서 미래에 아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현대의 사회가 후배들을 이렇게 만든 것 같아 어느 정도 책임을 통감하기도, 미안하기도 합니다.

 

박정림 대표님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금융시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회복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사회적으로 상당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체감된다고 하셨다. 금융계의 경우에도 원격 화상회의를 이용하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변화된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러한 바이러스가 처음 확산됐을 당시 혼란을 겪었을 동문들을 향해 응원의 말씀을 남기셨다. 나아가, 대표님을 동경하는 후배들에겐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시간과 경험이 주는 프리미엄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배짱 있게 큰 꿈을 이루겠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최고의 자리까지 달려 보라고 응원해 주셨다. 누구보다 큰 꿈을 바탕으로 삶을 개척해온 대표님의 노력이 참 인상 깊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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