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 옥탑방부엉이 포스트코로나 SNUBIZ Member
지난 ISSUE
지난 ISSUE
벤처경영기업가센터 이야기
스누임팩트 우리는 시장을 만든다
NUMBERS 시장 읽기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성공한 제자, 스승의 이름을 빛내다 - MBK파트너스 김광일 대표

글. 권도현 학생홍보대사

서울대학교 경영대 동문 MBK파트너스 김광일 대표님은 매년 경영대 학생을 후원하는 덕송장학금을 쾌척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공인회계사와 사법고시 합격 후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는데요. 현재 아시아 지역 대표 사모펀드 투자기업인 MBK파트너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최대 규모인 홈플러스 거래를 성사해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스승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었다는 그에게 덕송장학금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2016년 장학금을 전달하는 (우)김광일 대표와 (좌)성낙인 前 서울대 총장.

 

대표님께서는 덕송장학금에 어떠한 의미를 두고 있으신가요?

덕송장학사업이 시작된 해가 2009년입니다. 저에게 2009년의 의미는 아주 크죠. 곽수근 교수님의 대학원 조교로 들어가서 만나 뵌 지 20년째 되던 해가 바로 2009년이죠. 막연히 미뤄 뒀던 장학 사업에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한 해이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감사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장학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우선은 곽수근 교수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자 스승님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의 멘토로서 1989년부터 현재까지 저를 성원, 지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교수님 덕분에 여러 인생 경로에서 용기를 얻고 돌파해 나갈 수 있었죠.

저 또한 대학에 다닐 때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는데요. 물론 열심히 공부했고,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 일을 하기도 했지만, 서울대학교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도와 주었기 때문에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죠.

저 혼자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처한 사회에서 많은 감사를 느꼈기에, 20년째 되던 해에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수님께 전화를 드려 장학금 이야기를 꺼냈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힘들면 끝까지 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 갖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죠. 스승님의 이름으로 하는 장학 사업이면서 스승님께서 장학 모임의 리더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더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덕송장학금을 통해 어떤 도움을 주길 바라시는지요?

저는 덕송장학금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싶었습니다. 장학금에서 주는 생활비가 많지 않지만, 과외 아르바이트 하나 할 정도의 금액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시간을 아껴 주고 싶었죠. 제가 학교 다닐 땐 공부하고 싶어도 돈을 벌어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는데요. 제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시간을 장학생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또 학생들 옆에서 함께 고민해 주는 멘토가 되고 싶었습니다. 학생들과 직접 만나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사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다녀도 고민과 걱정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면 더 힘들 수도 있고요.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돌이켜 보니 너무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덕송장학생들과 연 2회 정도 장학 모임에서 만나고 있는데, 앞으로는 학생들이 더 도움 받을 수 있도록, 더 좋은 방법들을 고민 중입니다.

 

곽수근 교수님과의 연이 깊은 만큼,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교수님께서 서울대에 부임하신 첫해(1989년), 첫 조교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원래 공부를 끝까지 해서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죠. 하지만, 당시 경제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돈을 벌기로 했습니다.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 보다, 변호사를 떠올렸죠. 물론 교수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첫 조교가 한 학기만에 그만 두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려 한다니, 송구스러운 일이었죠. 한 달을 혼자 앓다가 결국 말씀을 드렸는데, 교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운 좋게도 이듬해 1차 시험을 합격했지만, 다음 2차 시험에서 낙방했죠. 그간 시험에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었던 저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녹두에서 신림사거리까지 걸어가면서 당시 어려웠던 사정과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뒤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더 공부해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교수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네가 1989년에 조교를 그만두고 사법시험 보겠다고 할 때, 네 눈빛이 호랑이 같이 불탔었는데, 지금은 그런 눈빛이 안 보인다. 그 의지와 마음을 되찾을 수 있으면 다시 도전하고 그럴 수 없다면 하지 말아라.”

그 순간 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떠오르더라고요. 당시 한국 사회는 격동과 변혁의 시기였는데, 변호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마구 떠올랐고요. 의지가 다시 타오르게 되었고 도전하겠다 말씀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게 인생에서 본질적이라 할 수 있는 저의 마음, 그리고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워 주셨죠. 교수님 덕분에 더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교수님과의 만남과 대화가 제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대표님의 인생에서 또 다른 결정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인가요?

로펌에서 PE로 향했을 때인 것 같군요. 저는 김앤장에서 꽤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였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 읽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치열하게, 열심히 일했죠. 그렇게 변호사로서 활약하던 차에, 저에게 PE라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웠는데요.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분야라 생각했고, 큰 관심이 생겼죠. 당시 한국 PE 쪽은 거의 황무지였기 때문에 더 도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역시나 교수님을 찾아 뵙고 여쭈어 봤죠. 교수님께서는 남아 있어도 좋고 도전해도 좋지만, 평범한 변호사 일을 그만하고 남들과 다른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 지난 10년간 김앤장의 김광일 변호사는 대단한 활약을 펼쳐왔으니, 잘 매듭을 짓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라”는 말씀으로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한 달 넘도록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PE로 나가서 앞으로 10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PE로 나가 맞이할 10년은 불확실해 보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가 김앤장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시험을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한 명의 변호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죠. MBK Partners로 가서 실패하고 김앤장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라도, 처음 꿈꿨던 행복한 변호사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시 용기 내고 새롭게 도전했습니다.

 

경영대학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최근 후배들이 이런 질문에 답변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 주더군요. 저도 ‘라떼’는 참 싫어합니다. (웃음)

인생을 계획한대로만 살긴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삶에서 얼마나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계획대로 사는 기쁨 보다 실패해 느끼는 좌절이 더 크지 않을까요? 요새 학생들은 인생을 계획한대로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빠르게 변할 겁니다. 5년 전과 오늘의 차이보다, 오늘과 3년 후의 차이가 더 클 테죠. 마찬가지로, 10년 후에도 변호사가 여전히 좋은 직업일지 아닐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인생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열하게 스스로 고민해 얻은 방향으로 믿음을 갖고 나아간다면, 세월이 흘러 뒤돌아볼 때 행복한 기억이 훨씬 많을 겁니다.

그러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을 잘하려고만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따져 보면 좋겠습니다. 선배가 시킨 그대로만 일하게 되면, ‘나’는 없고 기능적인 ‘부품’만 남아 있게 되겠죠. 이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만들어 낸 일의 질은 차원이 달라질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도전적인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도전적이란 ‘소수자’가 될 용기를 말합니다. 그간 저 역시도 소수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힘든 길을 견디고 통과할 수 있었는데요. 치열하게 고민한 자신의 방향을 믿고 소수자가 될 용기와 함께 도전하십시오. 시간이 지나서 결국 주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NEWSROOM 뉴스레터 신청

개인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