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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지는 속도(1)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1)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1)

 

일상을 아주 느리게 본다면, 뒤돌아본 풍경은 당신의 기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일상을 아주 느리게 실천한다면, 대면한 풍경은 당신의 어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이번 호에는 위험학(Risk Science)를 공부하는 석승훈 교수의 느린 목소리를 담아 보았습니다.

 

 

글 석승훈 교수

코로나 19 이후: 위험, 부채와 욕망 

코로나19 사태는 그 동안 인류가 유지해 왔던 경제 체계와 가치관에 대한 반성과 재고를 요구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GDP, 성장률, 이익, 주가 등 실체가 가려진 산술의 세계로 포장되지만, 누가 뭐래도 실체는 욕망과 부채의 경제이다. 처음에는 소비의 욕망에 불을 질렀고 소비의 욕망은 곧 부()의 욕망을 포섭하였다. 소비의 욕망은 실물의 소비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었고 부의 욕망은 스스로 과시하거나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는 식으로 실현된다. 기업가는 소비자의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스스로는 부의 욕망을 추구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소비자 역시 부의 욕망을 분출할 수 있도록 금융시장을 마련해 놓았다. 이제 소비자든 기업가든 우리는 모두 소비와 부의 욕망을 죄책감 없이 분출할 준비가 되었다.

욕망의 추구는 부채를 통해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과거에 부채는 기본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채는 욕망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제 욕망은 탐욕으로 진화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놀이터의 놀이처럼 지렛대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지렛대는 잔인하게 목숨을 담보로 진동한다. 위험이 채무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위험의 전가라는 측면에서 부채는 수익에 무관하게 일정한 지출을 약속한 모든 계약을 포함한다. 그것은 사업가가 내야하는 임차료나 고정적 임금일 수도 있으리라.

코로나19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이면서 약한 고리인 욕망을 공격했다. 욕망의 거품이 거두어 지면서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 소비의 욕망은 줄어 들어 수익과 소득이 감소했다. 소비 욕망의 급작스런 후퇴로 부의 욕망도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금융시장의 하락으로 재현되었다. 욕망이 아니라 욕구, 생존의 욕구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자 욕망에 기생했던 부채가 본색을 드러냈고, 위험이 실현되었다. 많은 사람과 기업이 부채의 위험을 한두 달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알파벳 기호로 답한다. L, U, V 혹은 W. 현대 경제의 과거는 숫자로 표시되고 미래는 기호로 예견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숫자나 기호가 아니라 욕망에 기초한다. 숫자와 기호는 지시어일 뿐 경제의 본질이 아니다. 코로나가 욕망에 끼치는 영향만이 경제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리고 욕망은 부채와 간섭하며 교차한다. 부채의 무게에 짓눌릴수록 욕망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 권력은 소비 욕망의 불씨를 살리고 부채의 무게를 덜어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욕망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숫자와 기호에 취한 권력은 화려한 지시어의 부활을 위해 국민의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어찌 되었든, 소비의 욕망이 꺼지지 않는 한, 코로나 이후에 경제는 다시 부활한다. 한편으로 소비 욕망과 부의 욕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스쳐 지날 수 있다. 억눌린 소비 욕망이 부의 욕망을 부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의 와중에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이유는 실물 경제를 반영해서가 아니라 억눌린 소비 욕망이 부의 욕망에 투영된 것이다. 실물과 주식시장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재무 방정식이 아니라 욕망의 방정식이다.

코로나 이후의 사업에 대한 논의는 비대면을 포함한 4차산업혁명과 위험관리의 화두를 중심으로 모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서퍼(surfer)가 되고 싶다. 숙련된 서퍼처럼 욕망의 파도를 능숙하게 타고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다. 숫자와 기호가 지시하는 욕망의 세계 속에서 파도가 높을수록 서퍼는, 더 높은 스릴과 더 빠른 속도를 경험하고 환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환호할 그 때에 또 다른 코로나가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욕망과 부채의 억제에 있겠지만, 현실은 반대로 꺼진 거품을 되살리기 위해 더 많은 욕망과 부채를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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