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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읽기(3)
시장 읽기(3)
글 최동범 교수
시장의 규칙
산업 생태계의 신진대사 및 혁신을 위해서는 신규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도태 기업의 퇴출이라는 시장의 역할이 필요불가결하다. 실패의 아픔 및 그에 대비되는 성공의 달콤함이 있어야 생존에 대한 의지가 북돋아지는 것이나, 실패의 아픔이 사라진다면 성공의 달콤함 역시 옅어질 것이고 나아가 애초에 노력하여 혁신을 이뤄낼 이유가 불명확해 질 수 있다.
신종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으며 시장에서의 정부 및 중앙은행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의 긴급 자금 공급은 본질적인 건정성에는 문제가 없으나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상업은행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렇게 옥석을 가린 대상에 한해 추가로 손실 방지를 위해 안전 자산을 담보를 잡고 긴급 자금을 공급하여 금융 시스템, 나아가 실물 경제에 더 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대가로 은행들은 평상시에도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게 된다. 현재의 국내외 정책들은 이 범주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 여타 비은행 금융기관, 일반기업, 혹은 소상공인에게 까지도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데에 이르고 있으며 사실 상 손실의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 및 경제 공황을 막기 위한 긴급 자금을 공급한다는 것이 표면상의 명분이지만 문제는 기업들이 일시적인 자금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사업 수익성의 문제를 겪고 있는지 가려낼 방법이 (혹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후자에 대한 자금지원은 사실상의 구제금융이고 자칫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되었어야 할 기업들이 이른바 좀비기업이 되어 존속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구제금융 및 좀비 기업의 존재는 시장의 왜곡을 야기한다. 우선 살아남은 자에게 갔어야 할 성공의 대가가 오지 않게 된다. 가혹한 이야기지만 시장에서 경쟁자의 도태는 살아남은 자에게는 축복이고 어찌보면 경쟁에서의 승리가 그간의 절차탁마의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아울러 위험을 관리하고 보수적인 경영을 할 유인이 희석된다. 누구는 좋아서 부채를 덜 끌어다 쓰고 현금자산을 비축해 놓았겠는가. 불측의 사태가 일어나도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정부가 대신 위험 관리를 해준다면 왜 굳이 몸을 사려야 한단 말인가. 혹자는 이번 사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형태의 충격이니 기업의 책임이 아니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적다고 하지만 위험 관리란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도 포함하는 것이 아니던가.
충격의 형태나 규모가 워낙 이례적이었고 대안이 많지 않았던 와중에 가능한 가장 적절한 정책 개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례적인” 일을 겪을 때마다 이 수순을 반복하게, 아니 반복해야만 할 것인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시장의 규칙과 정부의 역할이 어찌 변화하게 될 것인지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Q (기업가센터) 시장 효율성의 토대로서 경쟁(competition)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선택 주체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 그리고 선택 결과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의 간섭 혹은 지원은 선택 주체로서의 개인의 책임을 가볍게 하고, 그 결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보조금(subsidy)을 지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Entrepreneurship 연구에서는 자유주의적 경쟁의 미시적 토대로 창업이라는 행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는 선택의 사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규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도태 기업의 퇴출”이라는 교수님의 명제가 이러한 입장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잠재적 시장 진입(신규 창업) 역시 억제하고 있다면, 자유주의적 경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정부의 비선별적 보조금 지급이 시장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긴요한 것은 아닐지요?
A (최동범)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정부가 퇴출 기업의 발생을 억제하면 그만큼 신규 창업 역시 억제되고, 시장의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시스테믹"한 충격이 이미 일어났기 때문에, 과도한 기업의 도산이 (산발적 충격이 아닌 모두가 같은 충격을 받았으니 도산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겠죠) 연쇄 도산, 금융권으로의 전파, 그리고 (이미 1차적인 코로나 충격에 더한) 추가적인 실업 및 실물 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것도 긴요한 것이 맞습니다. 단지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시스테믹"한 충격이 일어나면 정부가 시장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앞으로도 당연시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경쟁의 규칙의 왜곡 및 모럴 해저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그러면 모두가 망할 텐데 정부가 그런 사단이 나는 것을 두고 볼 일이 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 애초에 각 개별 주체가 해야 할 위험 관리를 정부가 당연하게 떠맡아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각 개별 주체가 더욱더 "시스테믹"한 리스크에 노출을 늘리게 될 유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리스크는 어차피 정부가 알아서 해주니까요.
Q (기업가센터)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그리고 2020년 감염병의 시대에 자본 시장은 정부(중앙은행)의 적극적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실물 시장 대비, 자본 시장의 규제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자본 시장의 효율성이 정부의 규제에 의존한다면, 자본 시장의 위기 취약성은 자본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실물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만큼 효율적일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을지요?
A (최동범) 맞습니다. 금융 시장은 여타 시장에 비해 복잡하고 정보의 비대칭성 등의 문제도 크며 아울러 예금 보장 등 정부의 보호 역시 받고 있어 흔히 말하는 "완전 경쟁적인" 시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적절한 개입이 없이는 취약성 및 비효율성이 현저하게 드러날 수 있어 평상시에도 적극적인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죠. 일률적으로 금융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실물 시장보다 덜 효율적이냐는 문제는 결론을 내리기 힘듭니다만 (시장의 규모 및 범위가 다르고 실물 시장 역시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니까요) 실물 시장과는 다른 흔히 말하는 "왜곡"의 여지가 일어날 요인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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