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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동문칼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찬란하기만 하지 않았던 젊은 날, 사상적 방황 속에서 수수께끼처럼 만났던 화두를 다시 꺼내어 본다.

“신은 죽었다(Gott ist tott)”

기성세대의 권위와 부조리에 대한 도전심과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가치에 대한 불복종을 대변하는 구호로 이보다 더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은 없었다. 불멸로 여겨졌던 신이라는 존재도 죽었는데 인간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 무엇이 있고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제, 니체의 문장들을 낡은 책속에서 다시 읽는다. 신의 죽음에 대해 그 날에 보지못했던 감춰진 의미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신의 죽음과 함께 순장된 의도들과 그가 구현되기를 바랬던 삶의 모습들을 본다. 140년 세월이 지나, 인간의 삶을 열망하며 외쳤던 신의 죽음은 다시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초인들은 나타나 니체가 염원했던 세상을 만들었는가.

니체는 1844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다. 그 때 유럽은 무너진 왕정을 복고하려는 힘과 이를 저지하려는 혁명세력이 대립했다. 절대적이던 왕조는 몰락했고 기독교는 쇠약해졌다. 시민의식은 일어났고 물질주의가 세상의 공백을 채워나갔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체제도 법도 정의도 바뀌었다. 화폐는 금융의 발달로 공간적, 시간적 자유를 얻었고 빠르게 집적(集積)되었다. 빈부의 격차가 커져갔다. 새시대가 왔지만 대다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다. 아이들이 법과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그 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몰락을 예언하며 '자본론'을 썼다. 부의 대부분을 소유한 소수의 부르조아와 가난한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간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시민혁명의 고귀한 희생 위에 지어 진,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니체가 염원했던 삶의 모습이었을까.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희망한다."

인간을 구원할 신은 없다. 초인이 희망이다. 죽은 신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어도 초인은 만들 수 있고, 비록 스스로가 초인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초인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원전 206년경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말 위에서 얻은 천하를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한고조 유방의 참모 '육가'가 한 말이다. 유방은 바닥에서 일어나, 목숨을 수도 없이 잃을 뻔 했고 온갖 모멸을 견디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초왕 항우를 죽이고 천하를 얻었다. 그런데 참모인 육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들먹여가며 간언을 한다. 유방은 듣기 싫었다. '나는 천하를 말 위에서 얻었는데 시경과 서경따위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라고 경고했다. 이때 육가가 받아친 말이 "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이다.

공성(攻城)을 하여 천하를 얻는 것은 전투력과 통솔력으로 이루는 것이고, 선택된 탁월한 사람들만 해내는 능력이다. 하지만 치국과 평천하에 필요한 것은 용맹과 순발력만이 아니다. 세심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지배체계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통치이념이 필요하다.

예컨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를 칭할 때, 멸망한 연, 조, 위, 제, 한, 초나라 6국이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들이 활약했던 춘추전국시대는 무려 550년을 유지했다. 하지만 막강한 철옹성도 철갑으로 무장한 군대도 무수한 영웅호걸들도 진나라를 막지 못했다. 그런 진나라가 2대를 못 넘기고 망했다. 서한시대의 대표적 문인인 가의(賈誼)는 '과진론(過秦論)'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왕의 법도를 폐지하고 제자백가의 글을 불태워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였으며, 유명한 성곽을 허물고 호걸(豪傑)과 준재(俊才)들을 죽였으며,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다 함양(咸陽)에 모아 놓고 칼날과 실촉을 녹여 '구리로 만든 사람(金人)' 12개를 주조하여 천하의 백성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진시황은 검문과 감시를 강화하고 책을 거둬서 모두 불태웠다. 백성들을 철저히 통제하였으며 암살을 두려워하여 온갖 방책을 썼지만 결국 객사했다. '깨진 옹기를 댄 창문과 노끈으로 문지도리를 한 집의 자식이요, 천한 사람으로 유배살이를 하던 무리였으며 재능은 중간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 진섭(陳涉)이 나무가지를 베어 무기를 만들고 장대를 깃발로 삼아 밭둑에서 일어나자 진나라는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망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나라들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통일된 제국은 새로운 세상이고, 새로운 세상은 그들에게 전쟁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믿음은 실망이 되고 다시 원망이 쌓이자 민심은 돌아섰다. 나뭇가지를 깎아서 만든 창과 밭을 갈던 곡괭이를 상대로도 대군(大軍)은 나라를 지키지 못햤다. 대의(大意)가 이미 무너졌고 군사도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치세(治世)의 이치는 이런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미식가였던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이렇게 말했다.

"다함께 즐기려고 달걀 20개로 만든 오믈렛의 10분의 1이, 혼자 먹으려고 달걀 2개로 만든 오믈렛보다 언제나 더 맛있다."

인간에게 음식이 주는 기쁨은 사회적 기쁨이기 때문이다. <미식예찬>에서 그는 먹는 즐거움과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구분한다. 먹는 즐거움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이지만 식탁에서의 즐거움은 '허기나 식욕과 무관한 사회적 기쁨'인 것이다.

기업가가 기업을 만들고 경영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또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도 관악산 등산로만큼 많고 각양각색이다. 어떤 기업은 자신 또는 타인의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하고 또 어떤 기업은 '사회적 기쁨'을 위해서 존재하기도 한다. 어떤 기업이 사회적 효용을 창출하는데 더 많이 기여하는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측정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업도 결국은 시대와 공간 속에서 다양한 사회의 개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유지되고 있는 유한(有限)한 존재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고, 자연생태계는 공진화(coevolution)의 법칙 속에서 진화해왔다. 기업도 다양한 개체들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상생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사멸되지 않고 진화할 조건이 만들어진다.

한국 사회는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왔다. 그 위에 건설된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인간적 삶의 조건과 백성들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기업의 역할이 크다. 가장 효율적이고 집중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환경은 변하고 조건은 바뀐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속도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도 빠르게 변한다. 물질적 조건이 바뀌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면 시대정신도 바뀐다. 기업의 경영자는 예민하고 섬세해야 한다. 주변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기업이 무너진다. 불멸은 없다. 신도 죽었고 제국도 망했다.

기업들은 매년 입버릇처럼 '우리의 과업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라고 했고 '내년의 경영환경은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가장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또 저 소리'.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말이 되었고 조직과 사회에 전달되는 메세지도 힘이 없다. 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탓이다. 맥락은 놓치고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 말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간이 가장 큰 희망의 싹을 틔워야 할 때인 것이다. 인간의 땅은 아직은 기름지다."

신은 죽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절망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수많은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며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담은 희망이었다. 낡은 책속에서 그가 남겨준 의미를 되짚어가며, 이 세상을 위해 초인들이 나타나고 초기업들이 생겨나는 시대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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