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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인터뷰

최혁 교수의 명예로운 정년퇴임

최혁 교수의 명예로운 정년퇴임

 

 

정년퇴임을 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홀가분한 느낌도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처럼, 사람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지요. 게다가 정년은 오래전부터 그 시점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잊고 살다가 불현듯 정년이 닥쳐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특히, 젊었을 때는 꿈이 많았는데, 그때 목표했던 학문적 성취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교수 생활을 마무리 짓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전공 분야의 눈을 통해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세상만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원했는데, 그런 경지는 초입에도 도달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대한민국 최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을, 그것도 모교에서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정말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가르친 제자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오랜 세월 경영대학과 함께한 추억 중 특별히 기억에 남으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2020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코비드-19 사태 때문에 평생 처음으로 온라인 강의를 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강의가 될지 몰라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습니다. 아마도 강의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썼던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같이 저녁 식사하면서 논문, 학교 및 세상에 관해 나누던 동료 교수들과의 대화도 거의 단절되었습니다. 정년을 맞기 전에 교수님들과 직원분들에게 식사라도 대접하는 게 도리일 텐데 그런 기회조차 만들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 대화 상대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교수님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년을 맞기 전에 학교를 떠나신 교수님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경영대학장 직을 맡았던 기간 중 학내 보직을 맡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교수님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몇 교수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강신청 경매 시스템을 EMBA에 도입한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학장 재직 기간 중 서울대가 국가 기관에서 국립법인으로 바뀌는 중대한 체제 변화가 있었습니다. 법인화를 명분으로, 경영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기금교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일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본부 및 다른 단과대 학장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 소요되는 재정과 관련하여 학내 교수님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 등은 고통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일단락을 맺은 것은 보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본부의 요구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교수님들 학술연구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해 논문 인용 횟수를 기준으로 한 석학교수제도를 만든 것도 기억납니다.

서울대에 부임한 직후, 증권거래소(지금은 한국거래소)로부터 모든 거래와 주문의 내역이 담긴 방대한 자료를 구해, 사용에 편리하도록 가공한 IFB데이터를 구축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혼자서 여러 밤을 새우며 데이터베이스를 디자인하고 프로그래밍했던 일들, 원자료에 내재된 오류들을 찾아내고 수정하던 과정들 모두가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 자신은 물론 다른 교수님들,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들을 유수 학술지에 여럿 게재했습니다. 다만 제 뒤를 이어 업데이트 작업을 맡아줄 교수가 없어 데이터의 명맥이 끊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가치는 무엇인가요?

우리 학생들의 대부분은 미래 사회의 지도자가 될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철저한 이해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중에서도 제가 수업 시간에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시장경제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하며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원 배분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시장에 의존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찾기 어렵습니다. 각 구성원들의 인센티브를 극대화하여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데도 시장보다 더 나은 기구나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시장경제와 함께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흐르게 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노력해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다수가 소수를 착취하는 약탈적 민주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함께하지 않는 시장경제에서는 최적의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집권자의 뜻에 따라 언제 어떻게 제약조건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시장경제를 강조하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에 뒤처진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효과는 크게 없겠지만, 따뜻한 마음과 연민의 가치에 대해서도 가끔 얘기합니다. 대학생들의 인성과 관련해서는 사실 대학 교수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성인이므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인성을 바꾸기도 힘듭니다. 인성이나 세계관에 있어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퇴임 후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신가요?

요즘 들어 과학적 지식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비논리, 좋게 말하면 정치가 사회를 지배하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재난지원금, 공매도 규제, 가상화폐, 개인투자자들의 집단행동 등도 모두 과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문제들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이기심이나 감정을 어설픈 논리로 포장한 가짜 과학이 SNS를 채우며 일반인들을 오도하는 경우가 많고, 국가 정책 또한 이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근원은 제대로 된 경제, 금융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제가 가진 경제, 금융 분야의 지식과 철학을 정리하여 일반인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취미로 하고 싶습니다. 무슨 업적을 남기는 연구가 아니라, 궁금한 것들을 그냥 배우고 싶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무엇이든지 독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농업과 인공지능입니다. 저는 운동에는 소질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을 다니는 것은 작위적인 듯해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무엇인가를 생산하며 몸을 움직이는 대안으로 찾은 것이 농사입니다. 농사를 업으로 하면 노동이지만 재미로 하면 운동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9년 차 주말 농부입니다. 모종을 사서 밭에 심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씨앗을 사서 발아부터 시키지요. 씨앗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발아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신비를 느낍니다. 과연 DNA에 포함된 정보만으로 이런 체계적 성장이 가능한지도 궁금하고요. 농사짓는 과정에서 인생과 자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재미도 있어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취미로 하는 일이니만큼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40년 전부터 컴퓨터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터미널도 없이 메인프레임에 펀치카드로 입력하던 시절입니다. 이때 배웠던 포트란 언어는 제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기술발전과 유행을 따라, 20년 전쯤 C와 C++ 언어를, 3년 전쯤에는 파이썬 언어를 독학했습니다. 파이썬을 배운 이유는 파이썬으로 쉽게 기계학습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언젠가 로봇이 산업의 중심에 들어올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특히, 2000년도에 혼다자동차가 아시모라는 인간형 로봇을 만들었을 때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요. 오래지 않아 범용 로봇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생각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범용 로봇의 핵심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현재까지 개발된 알고리즘들의 원리를 살펴보면서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되어 어떤 결실을 얻으려는 생각은 없고요. 살아있는 동안 일어나는 기술 혁신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교수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은?

교수님들의 명성과 학교의 명성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러 교수님들이 서울대 이름으로 훌륭한 논문들을 많이 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경영대학이 더욱 발전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제는 논문의 수보다는 질을 높여, 국제적으로 많이 인용될 수 있는 논문들을 생산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여러 교수님들이 저를 동료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학교 발전을 위한 제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항상 관심을 두고 성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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