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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동문칼럼

창업의 요람으로 거듭나는 경영대를 보고싶다

창업의 요람으로 거듭나는 경영대를 보고싶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협회(GERA)가 주관하는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링(GEM)에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GEM 조사는 1999년 런던 경영대(LBS)와 미국 뱁슨대가 공동 기획한 것으로 기업가 정신과 국가 경제성장간 상관관계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국제연구 프로젝트다.

전 세계 50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국가별 기업가 정신 종합지수 6위를 기록해 놀라움을 안겨줬다. 미국은 11위, 일본은 22위였다. 국가별 기업가정신 종합지수는 그 나라 국민들이 창업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가, 향후 창업할 의지와 열정이 얼마나 있는가, 해당 국가는 창업할 만한 여건이 잘 돼있는가 등등을 종합적으로 나타내주는 수치이다. 한국은 2019년 15위, 2020년 9위, 2021년 6위로 매년 뜀박질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지금 창업하고 싶은 의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이 '창업하기 좋은 나라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한국인들 개개인은 '창업할 만한 지식과 기술,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초긍정, 절대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두려움이 있어서 못 했다'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50개국중 두번째로 낮았다. '두려움 따위 1도 없는 나라'인 것이다. 적당한 아이템이 없어서 못 할 뿐 아이템만 찾으면 바로 창업하겠다는 의지는 1위, 3년 안에 창업할 것 같다는 항목에서는 3위 였다. 카타르(1위), 아랍에미레이트(2위), 사우디아라비아(4위) 등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전 세계 스타트업들에 거의 묻지마식으로 뭉칫돈을 집어넣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을 제외하면 한국이 사실상 1위인 셈이다. 불과 1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주목받는 창업국가는 이스라엘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헬조선, 입시경쟁, 취업난, 집값 폭등, 좌우 대립 등 내우(內憂)에 매몰돼 있는 사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창업 에너지가 우리 안에서 싹트고 있다는 얘기다.

2020년 초부터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글로벌 셧다운 상황속에서 재택근무, 화상회의, 메타버스 등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같은 악조건이 오히려 IT강국인 한국에게는 창업의 기회와 남다른 성공사례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들의 취약점이 일거에 드러나면서 선진국에 대한 환상이 상당부분 깨진 반면 한국의 IT인프라, 의료시스템, 안정적인 치안, 탄탄한 제조업 기반 등 상대적인 강점이 부각된 것도 한국인들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부쩍 높였다. 영화 `기생충', BTS, '오징어게임'으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글로벌 융성 역시 전후 70년 동안 선진국들을 따라잡기에 급급했을 뿐 전 세계적으로 무언가를 선도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들에게 남다른 성취감을 안겨주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MZ세대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50대들이 많다. 196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6달러로 세계 100위였다. 당시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했던 나라가 코트디부와르, 모로코, 파푸아뉴기니 등이었다. 눈물겨운 후진국에서 태어나 고도성장기 개발도상국과 중진국 시절을 거쳐 50대가 돼서야 국민소득 3만5000달러의 선진국 시민이 된 세대와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 시민이었던 지금 20대는 30년의 세월, 120배의 국민소득 격차 이상의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다. 50대의 눈으로 볼 때 세계 어느나라, 어느 국민에게도 꿀리지 않는 패기와 자신감, 글로벌 여행을 통해 다져진 남다른 감각과 탁월한 센스로 무장한 20대들은 기특하고 뿌듯하기만 하다. 매년 2800만명 이상이 해외여행을 다니던 다이내믹 코리안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춰선 지난 2년간 자신들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최첨단, 최상급의 감각들을 국내에 시전했다. 서울은 어느새 뉴욕, 파리, 홍콩, 도쿄에 못지 않은 매력적인 도시, 미식의 성지로 거듭났고 강원도 고성, 여수 오동도, 제주도 사계리 해변에도 하와이나 프랑스 니스 해변 뺨치는 멋스러움이 흘러넘친다.

일찍이 골드만삭스는 2050년 한국이 세계 2위의 강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국이 통일된다면 세계 제1의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무니없어 보였던 골드만삭스의 예언은 세계 7위 경제강국이 된 지금 바짝 가까워졌다. '통일'은 당장 쉽지 않아 보이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의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을 최우선 투자처로 예의 주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기형적인 입시제도 탓에, 혹은 넘치는 상승 욕구 탓에 해외로 쏟아져 나갔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언어, 네트워크, 문화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에서도 통하는 창업 성공신화를 잇따라 써내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의 해외유학생 중 인구대비 유학생수로는 한국이 압도적 1위였는데 그런 열띤 교육투자가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인터넷과 닷컴 버블 시대만 해도 창업가의 언어적, 문화적 한계 때문에 혁신과 아이디어 역시 내수시장에만 머물렀다. 지금 창업하는 세대들은 시작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비전과 포부 역시 지구를 넘어 거의 우주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미국의 한 컨설팅업체는 한국의 '판교밸리'가 머지않아 미국의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글로벌 혁신과 창업의 전진기지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AI(인공지능), 로봇, 게임,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드론,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4차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IT 디지털 인프라와 철강, 자동차, 기계, 조선, 전기전자, 모바일까지 그야말로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가산을 탕진하는 수준의 몰빵 투자를 통해 길러진 최고급 인재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가진 장점들이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꽃을 피우고 있다.  1999~2001년 3년 간 116개국, 15만2000마일을 여행했던 짐 로저스 회장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나라다운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은 논외로 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 조차도 IT인프라나 기술, 산업구조 면에서 결코 매력적이지 않고 특히 경제, 교육, 기술, 산업기반, 정치체제, 법치, 의료, 교통 등 정치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가 의외로 별로 없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IT 국가이자 개방된 시장경제, 안정된 정치체제, 적정한 인구규모, 내수 시장, 산업 및 제조업 기반, 고급 인적자원 등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한국은 글로벌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 속에서 명실상부 최상위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재평가하고 주목하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아직도 해묵은 자격지심과 열등감, 주변인 의식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듯하다. 인류 공동체적인 비전, 전 지구적 위기 해결에 대한 소명의식 등도 희박한 편이다. 창업 동기를 묻는 질문에 미국, 캐나다 등의 창업가들은 '세상을 바꾸고 큰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주로 밝힌 반면 한국은 세대불문 연령불문 '압도적인 부(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절대적인 창업 동기였다. 18~35세가 주로 창업에 나서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은 35~64세가 창업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최근 4~5년 간 컴퓨터공학, 데이터 사이언스 등 개발 인력들의 몸값이 폭등하고 기업공개(IPO), 스톡옵션, 암호화폐 등으로 20~30대에 벌써 수백억원 자산가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됐다. 이 같은 자산을 바탕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연쇄창업에 나서거나 투자 전문가로 변신하는 젊은이들도 부쩍 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한 후배는 “IPO 자문업무 차 게임업체에 파견을 나갔었는데 IPO성공 후 웬만한 개발자들이 모두 100억원대 이상 자산가가 되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대 경영대 졸업생들의 절반 정도가 로스쿨에 진학한다고 하는데 30여년 전 행시-사시-외시를 봐서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지향하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진부한 얘기지만 미국 스탠퍼드대는 졸업생 3명중 1명은 창업의 길로 나간다는 통계가 있다.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 수는 약 4만개, 매출은 2980조원, 만들어낸 일자리 수는 540만개에 달한다. 하버드대는 창업기업 수 14만6429개, 연 매출 4300조원, 창출한 일자리 2040만개로 스탠퍼드대를 능가한다. 반면 서울대는 창업기업 수 963개, 연 매출 41조5088억, 일자리 10만개로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의 급진전으로 은퇴후 삶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창업, 이직 등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대생들, 특히 경영대생들조차 창업은 가장 마지막에, 안정적인 월급 소득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이 실패했을 때에나 생각해봄직한 최후의 선택지 비슷했다. 28년간 경제신문 기자를 하면서 지켜본 수많은 기업인들 역시 대부분 자발적이기 보다는 부득이한 선택의 결과로 창업에 나선 경우가 많았다. 물론 1999년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최근의 스타트업 열풍으로 대학 재학시절부터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긴 했으나 2017년 기준 한국의 대학 졸업생 중 창업한 학생들 비율은 0.8%에 불과하다. 자꾸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는 재학중 혹은 졸업후 창업하는 학생들 비율이 16%, 중국은 8%다. 우리와는 10~2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의 주식부자 10위를 보면 삼성 현대 SK 등 전통적인 부자는 6명에 불과하고 카카오 등 창업자들이 4명이나 포진했다. 온갖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기회가 많은 나라라는 증거다. 성공한 많은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 자유와 스스로 은퇴시기를 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안정적이고 소박한 월급 대신 창업이라는 불확실한 바다로 뛰어드는 용기와 결단, 그리고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이라는 달콤함 열매를 누리기까지 간난신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눈앞에 온 지금, 살면서 누구든 한 번 이상 어느 때고 창업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월급소득을 얻을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등 떠밀려 창업에 나설 것이 아니라(실패 확률도 매우 높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고 무수한 실패가 용인되는 20대에 바로 창업의 길로 나서는 것이 어떨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월급쟁이는 자신의 노동과 노력 100을 바치고 고작 30~40을 월급으로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눈치 보고 승진이 안 되면 어쩌나, 언제 떨려날까 콩닥콩닥 새가슴으로 살아야 하는 길이다. 물론 전문경영인 신화도 많고 창업이 도저히 적성, 능력에 안 맞는 사람도 많으니 일률적으로 창업만을 칭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울대생들, 그중에서도 경영대생들은 로스쿨이나 공무원, 대기업 취업의 길이 아니라 창업의 길을 더 진지하게, 더 절실하게, 더 과감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이유없이 희망을 갖거나 이유없이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나라가,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조건들과 자질들을 살려서 과감하게 창업의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 서울대가 창업의 요람이 되고 경영대가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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