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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예산분야의 전문가, 임기근 조달청장과의 만남
정책과 예산분야의 전문가, 임기근 조달청장과의 만남

1. 경제 관료로서 지금까지 어떤 커리어를 걸어오셨나요?
첫 번째 발령지는 경제기획원 예산실 예산정책과였습니다. 경제기획원은 당시 기획 기능과 예산 기능을 합쳐서 모두 수행했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조직에 처음 발령 받았던 것이 운이 좋았습니다. 이후에는 기획재정부에서 계속 근무하면서 1차관실과 2차관실 양쪽에서 모두 근무를 했습니다. 특히 예산 파트에서 근무를 많이 했는데 예산실에서 사무관, 과장, 국장을 통틀어 12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1차관실 쪽에서도 혁신성장본부와 정책조정국장을 거치면서 경제 정책도 다뤄보고 정책을 조정하는 업무도 했습니다.
기재부 밖에서는 대통령 비서실, UN 대표부, 국회에서 근무하며 국정기획과 국정과제 수립, 국제관계 및 정치적인 문제를 접하고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조달청장도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참모로서 역할을 해오다 기관장이라는 리더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조달청장을 하면서 리더의 역할인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의 역량을 모으고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직원들을 아끼고 조직 전체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보직을 거치면서 정책과 예산에 있어서 전문성을 키웠습니다. 특히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부처의 정책의 상당 부분을 반영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제 정책, 성장 정책, 재정 정책 등 여러 정책 전반을 다뤄본 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조달청의 업무는 무엇인가요?
조달청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 서비스, 시설을 공급해 주고 계약을 맺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고, 이에 더해 공급망 안정과 관련해서 알루미늄, 구리 등 주요한 물자를 비축하고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나라장터’라는 국가 조달 전체를 관장하는 전자조달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이것만 보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공공조달 규모는 210조 원으로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조달을 통해 조달물자를 공급받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은 7만여 개, 그리고 이를 공급하는 조달기업은 60만여 개나 됩니다. 그렇기에 공공조달을 통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경제정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자원의 배분과 경제성장, 경기 변동성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조달청은 76년이나 된 조직입니다. 1949년 ‘임시외자총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1961년에 ‘조달청’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생겼습니다. 이렇게 조달청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오래된 정부 조직입니다.
특히 근래에는 정책 환경이 굉장히 복잡해지면서 예산, 세제, 통화, 금융, 규제 등 개별 정책수단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옛날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공공조달’을 중요한 정책수단의 하나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될 시기가 왔습니다. EU, OECD 등 세계 각국은 공공조달을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출생 극복, 탄소중립, 산업 생태계 육성, 사회적 책임 등 국가의 전략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공공조달의 역할이 앞으로는 점점 더 중요해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출산장려기업, 저탄소제품에 대해 입찰가점을 부여하고, 혁신적 기업의 해외수출지원과 사회적 약자기업을 우대하는 등 정책수단으로서 공공조달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3. 조달청장으로서 역점 추진하신 정책과 성과는 무엇인가요?
저는 조달청장으로서 두 가지 캐치 프레이즈를 정했습니다.
① 중소‧벤처‧혁신 기업의 벗
진정한 친구는 어려운 입장에 있는 친구는 도와주고 잘 되는 친구는 더욱 잘 되도록 밀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조달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조달청이 기업들의 친구가 되어 어려운 기업은 도와주고 우수한 기업은 더욱 성장하게 만들자는 의미로 ‘중소‧벤처‧혁신 기업의 벗’을 첫번째 캐치 프레이즈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범부처 협업이라고 해서 조달청하고 인연을 맺은 기업은 실력이 검증된 기업이기에 R&D와 해외수출을 위해 산업부, 고용부, 중기부, 외교부 등 다른 부처와 연결해 주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공조달길잡이’를 통해 공공조달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의 상황에 맞게 벤처나라, 혁신제품, 우수제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연결해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② Back to the Basic
두 번째 캐치 프레이즈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Back to the Basic’입니다. 공공조달 시장에 일반 국민들이 기대하는 가치인 ‘공정, 투명, 품질, 안전’이라는 기본 가치가 공공조달 시장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입찰, 평가와 관련된 심사를 공정하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투명한 것 이상의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최근에는 평가 전 과정을 유튜브 생중계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입찰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부정을 신고하게 하여 불공정 조달행위를 하는 기업들은 일벌백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조직의 일하는 양식을 ‘체감‧현장‧행동‧속도’ 네 단어로 정하였습니다. 조달청은 현장과 밀착돼 있는 조직이기에 정책의 현장성을 충분히 구현해내야 합니다. 국민이나 조달기업이 정책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현장의 목소리에 맞춰서 행동을 속도감 있게 해야 하기에 조달청의 일하는 양식을 ‘체감‧현장‧행동‧속도’로 정했습니다.
덕분에 조달청은 2024년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에서 5개 전 부문에서 ‘우수’를 받았습니다. 평가 대상 기관 46곳 중 5개 전 부문에서 우수를 받은 기관은 3곳뿐입니다. 그리고 인사혁신처의 적극행정 평가에서도 우수를 받고, 국민권익위의 청렴도 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님을 섭외를 해서 조달청 업무를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강수진 단장이 세계적인 발레 스타를 육성하는 것처럼 조달청도 기업이 발전하여 해외로 진출하는 스타가 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레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조화를 잘 이루어서 하는 예술인 것처럼, 조달청 업무가 공정하고 조화롭게 상호 거래와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영상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이 홍보영상은 각종 광고대상에서 대상 2개를 포함, 모두 4개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25년도 캐치프레이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용어 사용보다는 ‘중소‧벤처‧혁신 기업의 벗 시즌2’, ‘Back to the Basic 시즌2’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존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 기업이 더욱 체감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조달행정을 펼치고자 합니다.
4. 공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32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기존에 있는 제도를 약간 변형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제도나 계획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지에 자유롭게 계획을 그리면서 전임자로부터 제약받지 않고 나의 논리와 이 계획의 타당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주장을 펼치면서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중기재정계획으로 5개년짜리 국가재정 운용계획이 있는데, 이를 제가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농협의 신용과 경제를 분리해낸 일을 하기도 했고, 예산정책과장 할 때 공약 가계부를 처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예산총괄과장 하던 시절에는 20년 만에 헌법상의 예산 통과 기한을 준수해서 국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정책조정국장 할 때는 한국판 뉴딜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때는 비상경제장관회의 주무국장을 하면서 매주 비상경제장관회의도 운영해 보았고, 공공정책국장 할 때는 공공기관 개혁 100대 과제를 만들어서 직무급도 도입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제도나 계획을 도입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기획재정부에서는 연말에 닮고 싶은 상사를 직원들로부터 투표를 하는데 3년간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되면 명예의 전당에 가입시켜 줍니다. 역대 기획재정부 출신 중에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사람은 꽤 있지만 대부분 실장, 국장, 고참 과장때 가입합니다. 저는 초임 과장 때부터 스트레이트로 3년 연속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이 되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 이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조달청 홍보영상을 만든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강수진 단장을 섭외했고,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와 함께 멋진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차세대나라장터를 주제로 홍보영상 2탄을 제작하고 있는데, 양궁의 김우진 선수, 역도의 박혜정 선수, 태권도의 이다빈 선수를 섭외했습니다. 기존 나라장터 시스템의 한계를 돌파해서 새로운 나라장터 시스템으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 국정감사 이후 조달청 익명 내부게시판에 “우리 청장님 너무 멋져요”라는 게시글을 달아준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5. 학부 시절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수업이 있으신가요?
저는 86학번인데 당시는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저는 열혈투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진로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상당히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서는 먼저 ‘전사적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케팅이라는 것이 물건을 만들어 놓고 나서 어떻게 팔지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수요와 니즈를 포착하고 여기에 맞춰서 생산과 유통 전과정을 재설계하는 것이 마케팅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며 꼭 마케팅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정부에서 정책을 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해야 합니다. 정책 수요자들의 욕구와 니즈를 잘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정책과정이 잘 이루어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사적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정책의 영역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이미 만들어 놓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과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회계’가 기억에 남는데, 회계라는 게 결국에는 숫자를 통해서 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 회계와 기업과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동기인 최종학 교수가 쓴 ‘숫자로 경영하라’를 읽으면서입니다. 그 책은 아주 재미있기도 하고 회계와 기업활동의 실제 관계를 굉장히 잘 포착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6. 경영대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법조인이 되든, 회계사가 되든, 투자은행에 가든, 공무원이 되든지 간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행복의 기본적인 전제는 의미와 즐거움이 같이 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 의미가 없는 즐거움은 공허하고 즐거움 없는 의미는 삭막하기에 의미와 즐거움의 균형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다른 점은 공동체를 의식하느냐 의식하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라는 개념에는 공동체가 설 자리가 없지만, 개인주의라는 개념에는 공동체가 설 자리가 있습니다. 건전한 개인주의가 발전해야 성숙하고 건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고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지 않고 공동체를 의식하는 삶을 살면서, 외부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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