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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소비자보호
마케팅과 소비자보호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소비자보호원(현 한국소비자원)에 다니던 중 대학원 진학과 직장 근무를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일반대학원에 진학하여 마케팅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선입견으로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케팅 활동과 기업 규제적 요소가 있는 소비자보호는 많이 상반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상호 공통점도 있으며 함께 이해해야 할 부분도 많다고 느끼게 되어 개인 견해를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다.
정부의 소비자 시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소비자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기업과 소비자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는 일이다. 연간 소비자의 상담 건수는 70만 건이 넘고 소비자원을 통해 피해 구제 절차를 밟는 소비자는 4만 명이 넘는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문제는 소비자 피해의 상당수가 기업의 잘못된 마케팅 활동과 연관된다는 점이다.
실제보다 부풀린 거짓·과장 광고, 기만적 판매 방법과 비합리적 제품 가격 등이 주된 원인이다. 사실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환경에서 판매 촉진을 위해 무리수를 두다 보면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피해는 소비자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심한 경우는 기업의 위기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올해 모 기업이 유제품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과장광고를 하여 여론의 지탄을 받고 결국 기업이 매각 위기까지 간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기업의 마케팅과 공공의 소비자보호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두 분야 모두 소비자와 밀접한 접촉이 필수적이다. 마케팅에서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맞춤형 판매활동을 위해 고객과의 관계적 요소가 중요한 것처럼 소비자 보호도 직접적 대면(상담)을 통해 소비자의 피해를 이해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한다. 양 기능의 최종적 목표가 소비자의 만족이란 점도 공통적이다.
소비자의 만족 정도가 시장 주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기업 매출과 이익으로 직결되듯이, 소비자원 등 공공기관을 이용한 소비자의 만족도는 매년 객관적으로 측정되어 기관별 경영평가와 조직 및 개인성과에 반영된다.
한편으로 기업의 마케팅과 공공부문의 소비자보호 활동이 더욱 성공적이고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각 영역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관심과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광고와 정보를 제공할 때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여 소비자를 오인시키거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을 삼가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에서 마련한 거래 질서 규칙인 소비자 법규들을 잘 이해하여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저촉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보호의 규제적 측면에서는 기업의 모든 활동을 법제화하여 규제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과도한 규제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본 방향 설정 등 적정선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소비자보호 규범을 만들 때에는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여 경영상 현실과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절차도 거쳐야 한다. 소비자원에서도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 방향과 제도를 마련하여 정부에 건의하는 과정에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한 복잡한 신유형 거래가 증가하면서 기업의 마케팅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사이에 균형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온라인 사회관계망인 SNS 플랫폼, 온라인 쌍방향 쇼핑 채널인 라이브 방송, 모바일 앱 등을 통한 국내외 거래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나아가 온라인에서의 마케팅 방식은 과거와 비해 더욱더 정교해지고 은밀해져서 소비자가 온라인의 상품 광고 등 일정 패턴을 클릭해 따라가다가 부지불식간에 피해에 이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정부에서는 신유형 거래에서의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소비자법의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OECD 등 국제기구에서는 기업의 온라인에서의 다크패턴(Dark Commercial Pattern, 눈속임 설계)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소비 환경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 해도 기업의 적극적인 소비자 중심 경영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는 소비자 피해의 사각지대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업과 공공부문의 핵심 고객인 소비자의 궁극적 만족을 위해, 또 이를 통해 각 경제 주체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더욱 합심하여 노력하는 내일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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