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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육성과 금융의 역할
100년 기업 육성과 금융의 역할
글. 윤종규 동문
오래전부터 안고 있는 숙제와 같은 단어가 있다. 경영 현장의 시급 과제에 매달리다 보니 갑갑한 체증처럼 남아 있는 단어, ‘100년 기업’이 그것이다. 고령화와 저성장 경제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코로나19 장기화로 폐업 기업이 늘고 있는 지금, 다급한 마음이 들 정도로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지난해 발표한 일본의 닛케이BP컨설팅 자료에 의하면, 세계에서 100년 이상 업력을 지닌 기업은 일본이 33,076개 사로 가장 많고, 미국 19,497개 사, 스웨덴 13,997개 사, 독일 4,947개 사, 영국 1,861개 사 등으로 나타났다. 200년 이상 업력을 가진 기업도 일본 1,340개 사, 미국 239개 사, 독일 201개 사, 영국 83개 사, 러시아 41개 사 등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 업력을 지닌 기업은 지난해 인쇄회사인 ‘보진재(寶晉齋)’가 108년의 업력을 뒤로 폐업하면서 9개 사에서 8개 사로 줄어든 상태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을 ‘장수기업’, 45년 이상 된 기업을 ‘명문 장수기업’으로 명명하고 있을 정도이다.
100년 기업의 조건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으나 대부분 성공 사례만 제시될 뿐 정답이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 기업의 공통점으로는 적절한 가업승계, 전략의 유연성 또는 경영혁신, 독자적인 기업문화 보유 등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가업승계는, 역량을 갖춘 경영자로의 승계가 중요한데 최근 일본에서 직계 존비속에서 사외 인물로 확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승계 작업이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경쟁력의 대물림이어야 한다는 각성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절한 가업승계는 법인의 영속, 국가경쟁력 강화는 물론 평생을 동고동락한 종업원의 고용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둘째, 전략의 유연성 또는 경영혁신이란 성장엔진의 교체, 신규시장의 창출, 신기술의 도입 등과 관련된 것으로 환경변화 극복을 위한 노력을 말한다.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중추 사업을 유지해 나감과 동시에 경영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추가해 나가는 것이다. 성공의 경험이 성장의 추진력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문화란 조직문화, 단기 실적주의 탈피 등과 같은 기업의 채질을 말한다. 협력업체·소비자·임직원 등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중시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공헌도도 중시하는 기업 생명력의 근본이 되는 DNA인자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KB금융그룹에서는 100년 기업 육성을 위해 크게 두 가지, 경영컨설팅과 가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경영컨설팅에서는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진단,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재무진단, 세무진단, 인사/성과평가, 회계감사 사전 준비, 원가분석, 벨류에이션(Valuation), 내부통제, 지식재산권 자문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업승계 컨설팅에서는 경영진의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승계에 따르는 각종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주식가치 평가, 시나리오 분석, 절세 포인트 검토, 사업구조 개선, 개인자산 리스트럭셔링(Restructuring)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작년부터 코로나19로 거의 추진하지는 못했지만, 오프라인 행사로 소호 멘토링 스쿨, 소상공인 창업아카데미, 유관기관 행사 등도 지원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개의 허브점과 12개의 센터를 가동하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특별 출연하여 신규보증 한도를 대폭 확대한 바 있다.
이러한 KB의 서비스가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대학 교단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지인과 저녁 식사 중 들은 씨앗의 발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씨앗이 싹트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물, 공기, 온도, 햇빛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씨앗에는 수명이 1~2년밖에 안 되는 단명 종자가 있는 반면, 3~4년이 지나도 싹이 트는 장명 종자가 있고, 중명(상명) 종자도 있다고 한다. 또한 식물은 발아온도와 생육온도가 다르며 싹이 틀 때 빛이 있어야 하는 호광성 씨앗이 있는 반면 빛이 방해가 되는 혐 광성 씨앗이 있고 이에 상관하지 않고 발아하는 씨앗 등 매우 다양한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씨앗을 잘 발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수명이 지난 씨앗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광(光)발아 씨앗인지, 암(暗) 발아 씨앗인지, 저온 또는 고온처리가 필요한 씨앗인지, 발아 억제물질이 묻어 있는 씨앗인지, 두꺼운 껍질을 가진 씨앗이라면 어떻게 개갑(開匣) 해 줘야 할 것인지 등과 같이 씨앗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후 절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해 왔다고 자부했던 서비스가 진정으로 씨앗(기업고객)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했던 것인지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맞춤의 수준을 더욱 정치화(精緻化)할 필요는 없는지, 기업고객의 체감 만족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은 아닌지, 금융상품과 서비스와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 노력은 효과적이었는지 등이 핵심이 될 것이다.
금융업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사회 구성원의 후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다. 국민경제를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자면 몸 안에 흐르는 피에 비유되는 이러한 금융이 향후 100년 기업 육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대전제는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업승계’,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업승계’라는 용어의 시대가 저물고 더 넓은 의미의 ‘기업 승계’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경쟁력의 승계, 일자리 창출력의 대물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은 먼저 자금을 제공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시장과 산업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하는 노력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으며, 특히 경영컨설팅 분야에서는 종합적 경영과제 도출과 해결형 서비스를 추가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부문별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전담인력 외에 종합 진단력을 가진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하거나 내부에서 육성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가업승계 컨설팅 분야에서는 차명주식 정리나 가지급금 정리 등과 같은 세금 문제, 납세 재원 지원 등과 같은 서비스도 필요하지만 추가적으로 승계자(씨앗)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진정한 기업가로 싹틀 수 있도록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확대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금융이 동반자로서 기능을 다 하기 위해 전담인력을 서포트해 주는 후선 지원팀도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국가 경쟁력 제고로 나타날 것이고, 금융권의 안정적 수익 증대와 주주가치 제고에도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창업연도별 기업체수에 의하면, 1949년 이전 창업한 기업체, 즉 약 70여 년의 업력을 지닌 중소기업은 185개 사였다. 이들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금융권의 노력과 함께 정부는 물론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때 가능할 전망이다. 오래된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경제가 튼튼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여 향후 우리나라에도 더 많은 100년 기업, 아니 200년 이상 기업들이 활약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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