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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언론 신뢰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언론 신뢰도
박아란(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
인터넷 기사를 읽다보면 ‘한국 언론 신뢰도 전 세계 꼴찌’라는 표현을 기사 본문에서든 댓글에서든 종종 접하게 된다.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드러내는 데 주로 사용되는 이 문구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실시하는 조사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매년 1월 세계 40개국에서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조사 결과를 6월 ‘로이터 디지털뉴스 리포트(Reuter Digital News Report)’라는 보고서를 통해 발표한다. 각국에는 조사대상 파트너가 있으며 한국 측 파트너는 필자가 속한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다. 필자는 ‘로이터 디지털뉴스 리포트’ 담당 연구자로서 2020년 조사 결과가 나올 즈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언론을 ‘진흥’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언론 신뢰도가 바닥을 칠 때마다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40개국 중 40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언론 신뢰도 측정은 ‘언론에 대해 전반적으로 신뢰하십니까’라는 문항에 대해 5단계의 답변 항목 중 ‘매우 그렇다’와 ‘약간 그렇다’라는 답변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한국 응답자들은 독특한 패턴을 보이는데, ‘잘 모르겠다’라며 판단을 보류하는 응답 비율이 45%로서 40개국 평균인 32%보다 상당히 높다. 이러한 응답 성향을 고려하여 5점 척도의 평균값 기준으로 신뢰도를 계산해보면, 한국은 평균 2.80점으로 영국과 함께 공동 36위로서 간신히 꼴찌를 면할 수 있다. 평균값 기준으로 한국보다 언론 신뢰도가 낮은 국가로는 프랑스, 미국, 칠레가 있어서 언론 입장에서는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뉴스 전반을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감소했다. 이러한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은 미디어 이용자들의 뉴스 이용 편향성도 그 원인중의 하나라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설명했다. 즉, 이용자들이 언론에 불만족하거나 뉴스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와 다른 관점의 뉴스에 대해 불신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하락하게 됨을 뜻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한국에서 두드러진다. 한국 응답자는 특정 관점이 없는 객관적 뉴스보다는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률이 40개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독일, 일본, 영국, 덴마크 등의 국가에서는 특정 관점이 없는 객관적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 비율이 훨씬 높은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더구나 조사 결과 한국에서는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에 대한 선호도가 정치 관심도가 높고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사람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보수 또는 진보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중도인 사람들에 비해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은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성향에 따라 의견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미디어 이용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도 높음을 뜻한다.
자신과 같은 관점의 뉴스만 접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미국의 저명한 헌법학자인 Cass Sunstein은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민주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대는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서 사회적 유대감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역설적으로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의견 양극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자신이 동조하는 의견이 담긴 채널과 게시판을 골라보면서 자기와 다른 의견에는 ‘가짜 뉴스(fake news)’라 이름 붙이고 지지자들끼리 응집하는 현상도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들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고 언론 자유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필터 버블이 심각해질수록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
작년 초반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에는 연말쯤이면 전염병으로 인한 비상 상황이 종식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경영 92학번들은 이유재 학장님의 제안에 따라 졸업 후 처음으로 ABCD반이 연합하여 송년회를 개최할 계획도 세웠지만 연말 코로나19 확산세에 결국 모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위축되어 있다. 이렇게 힘들고 지칠수록 쉽게 분노하게 되고 가짜 뉴스에도 혹하기 쉬운 법이다. 따라서 언론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여 혼란스러운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오는 6월 로이터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 언론 신뢰도가 순위에서 한 칸이라도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올해 연말에는 경영92 연합송년회가 꼭 열릴 수 있기를 봄의 길목에서부터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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