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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이야기, 『이건희의 말』

열두 번째 이야기, 『이건희의 말』

『이건희의 말: 지행 33훈이 녹아 있는 천금의 어록』 민윤기 엮음, 스타북스, 2020.

 

이건희 회장이 삼성 회장으로 취임한 87년, 삼성 그룹의 매출은 9조 9,000억 원이었다. 2014년 삼성 그룹의 매출은 400조 원, 무려 40배나 늘었고 종업원 수는 1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증가했다. 협력 업체까지 감안하면 600여만 명이 삼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 전체 법인세 납부액에서 삼성전자 단일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0%나 될 정도로 기업을 성장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이건희 회장의 말이다. [이건희의 말: 지행 33훈이 녹아 있는 천금의 어록](민윤기 엮음, 스타북스, 2020)에서 말의 힘을 느껴보자.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 총수인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언론, 인터뷰, 저서, 신년사 등 숱한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그 어느 한 마디도 충동적으로 ‘갑자기’ 말하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라도 ‘갑자기’는커녕 심사숙고한 끝에 하였다. 어떤 문제든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또, 또 생각한 끝에 ‘작정’한 다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야기할 내용을 A4용지에 적어놓거나 그것을 보고 말하지 않았다. 준비된 원고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심사숙고한 내용에 의지하였다. 놀라운 직관과 감을 통해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신(神)의 한 수’ 같은 위력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건희 회장의 말의 위력 첫 번째 사례는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해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열렸던 ‘삼성 사장단 회의’의 발언이었다.

 

해외 간담회를 통해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고, 사장단과는 800시간에 걸쳐 토의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간담회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는 다들 피곤한 줄도 몰랐다.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하면 8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8월 4일 도쿄 회의를 마지막으로 간담회를 끝냈다.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이래 68일간의 대장정이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집니다.
개성화로 갑니다. 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서,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집니다.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993년 6월)

 

이날 회의에서, 그는 삼성 사장들을 향해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명령을 하고, 설득도 하고, 협박에 가까운 격한 내용으로 열변을 토해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잠자고 있던 사장들을 ‘한방에’ 깨워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래서 삼성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1993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경제평론가들이 많다.


(나) 업의 개념

이건희 회장의 말의 위력 두 번째 사례는 ‘업(業)의 개념’에 관한 통찰있는 말 한마디이다.

 

”나는 삼성의 직원들에게 ‘업(業)의 개념’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며 달을 보라고 외치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만 쳐다보면 어찌 되겠는가?“

 

‘업(業)의 개념’에 박기완 교수는 이렇게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업의 개념을 정의할 때 핵심역량을 살펴봐야 한다. 전략에서는 ‘업=핵심역량’의 등식으로 업을 설명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CEO는 삼성전자 성공의 비결을 사시미 이론으로 설명했다. 마치 생선회가 하루만 지나면 상품 가치가 급락하듯이, 아무리 핫한 신상품이라도 수개월이면 범용 상품화(commoditization)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업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은 스피드다. 고객에게 전달될 때까지 걸리는 리드타임을 최소화해야 신선한 상태일 때 상품을 팔 수 있고 그래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재고를 소진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호텔은 어떤가? 서비스업이라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한 직원과 서비스 프로세스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업의 핵심역량을 키우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신라호텔의 한 임원은 회장의 질문에 고민한 결과 다른 답을 내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호텔업은 부동산업이자 장치 산업이라는 것이다. 호텔의 경쟁력은 입지(어디에 위치하는가?)와 호텔 내부의 시설물(레스토랑, 수영장, 피트니스 클럽 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상품의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 쉽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 같은 자원과 역량(핵심역량)이 튼튼하다면 지속적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듯 업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봐야 한다.


(다) "지행용훈평"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셋째는 지행용훈평의 인재관리의 비법이다. 디지털 시대의 중심에 있는 21세기를 이끈 인물로, 이건희 회장은 스티브 잡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는 변화와 개혁을 준비해 시장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두 사람의 생각과 말이 거의 궤(軌)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희에게는 스티브 잡스도 가지지 못한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그는 경영자들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제시했는데, 이것을 본인이 실천한 점이다. 그는 평생 삼성 회장으로 봉직하면서 실제로 “알고(知), 행하고(行), 사람을 쓰고(用), 가르치고(訓), 평가(評)”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리더란 알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시킬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삼성 임원을 역임한 신태균 박사는 이렇게 해석한다. 지(知)·행(行)·용(用)·훈(訓)·평(評)에서 ‘지’는 알고(1~4단계), ‘행’은 할 줄 알고(5~6단계), ‘용’은 시킬 줄 알고(7단계), ‘훈’은 가르칠 줄 알고(8단계), ‘평’은 평가할 줄 아는 것(9~10단계)을 의미한다. 이 5가지가 모두 가능하면 진정 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를 이끄는 일류 경영자나 리더라면 모름지기 자신만의 전문 분야나 사업, 경영, 리더십, 조직 관리 전반에 대해 알고, 할 줄 알고, 시킬 줄 알고, 가르칠 줄 알고, 평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안다’의 축지법을 인생이나 직장 생활의 단계에 따라 적용해보자.

먼저 학창 시절에는 무엇이든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知),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단순히 아는 것보다 할 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行), 시간이 지나 간부로서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가 되면 자신이 하는 것보다 시킬 줄 아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用). 이후 경영자가 되면 조직 구성원을 시킬 줄 아는 단계를 넘어 가르쳐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訓), CEO나 최고 책임자의 지위에 오르면 조직 전체 구성원이 하는 활동 전반은 물론 조직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할 줄 아는 전략적 의사 결정 능력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評).


(라) 미래를 이야기하라

이건희 회장은 늘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1, 2년 후가 아니라 10년, 후의 미래를 말하곤 했다. 1987년 삼성 회장 취임할 무렵의, 진공관 텔레비전 시절에 반도체를 이야기했고, 휴대전화가 상용되기 전부터 곧 휴대전화는 1인당 1대 소유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이를 선점하자고 말했고, 아날로그 시대에는 결코 100년 기술의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디지털로는 앞서간다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두 그가 말한 대로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과거에 사로잡혀있는가,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또, 또 생각한 끝에 말하는 미래와 경영에 대한 이건희 회장님의 말을 듣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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